데어데블 : 본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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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 28. 오후 3:21:48
데어데블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설정은 역시 앞을 볼 수 없는 히어로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건, 이 설정이 단순히 “눈은 안 보이지만 다른 감각이 초인적으로 발달했다”는 능력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전투 장면에서 그렇다.
맷 머독은 상대의 모습을 보는 대신 발소리를 듣고, 숨소리를 듣고, 심장 박동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나레이션과 독백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처음 미국 만화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놈들은 왜 나레이션을 이렇게 많이 쓰지?”
일본 만화와는 다르게,
그림으로 이미 다 보여주고 있는데도 캐릭터는 계속 생각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자기 감정을 말한다.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굳이 안 읽어도 되는 글까지 읽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갑다'하며 넘겼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다.
데어데블에게 나레이션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오히려 맷 머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그 자체에 가깝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장면을 보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맷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도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냄새, 촉감과 공간감으로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한 장면에 그림과 글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어도 이상하게 축 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나레이션 덕분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가’를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된다.
다른 히어로였다면 지루하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는 독백이
데어데블에게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시각적인 매체인 코믹스에서 시각을 잃은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문장이 필요하다는 점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그림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나레이션은 맷 머독이 느끼고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 둘이 겹쳐지는 순간이 본 어게인에서 가장 재미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글이 많아”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 순간 그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맷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왜 이 작품이 오랫동안 계속 언급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오래된 유명작을 하나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아 이게 코믹스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이 작품을 읽고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에헤헤 데어데블 재밌당'보다는 코믹스라는 매체를 읽는 방법인 것 같다.